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재일 한국-조선인 (문단 편집) == 규모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Population_of_Koreans_in_Japan.gif]] [[일본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재일 한국-조선인(특별영주권을 가진 재일교포뿐 아니라 일본에 거주하는 일반 한국인도 포함)의 인구는 '''[[대한민국|한국]] 426,908명, [[조선적]] 27,214명으로 총 454,122명'''이라 하며, 이중 일본에 거주하는 일반 한국인이 아닌 특별영주권을 가진 재일교포는 '''300,786명'''이고, 한국-조선적 국적의 누적 귀화 허가자 수는 '''379,878명'''이라 한다. [[https://ja.m.wikipedia.org/wiki/%E5%9C%A8%E6%97%A5%E9%9F%93%E5%9B%BD%E3%83%BB%E6%9C%9D%E9%AE%AE%E4%BA%BA|#]] 19세기 말부터 일본의 식민지배를 거쳐 서서히 늘어나 [[관동대지진]] 당시에 8만 명 수준이었다. 1950년대부터 신규 유입이 줄어들고 자연증가하는 만큼 귀화자가 생기면서 일정한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 파란 그래프는 일본에 거주하는 모든 조선인/한국인을 나타내며, 빨강 그래프는 일본의 "특별영주자"의 수이며 진정한 재일교포의 수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일본 거주 한국인"은 재일교포과는 다른 종족이라 할 만큼 다르다.][* 특별영주자는 일본이 패전후 일본에 거주하는 한때 지배하던 대만/한반도 출신에 한하여 일본인과 거의 동등한 사회활동이 가능하게 하는 재류자격인 특별영주권을 가진 자를 말한다. 또한 특별영주자의 아이도 특별영주권을 취득 가능하며 특별한 문제나 전과가 없다면 귀화에도 유리하게 작용된다.] 재일교포도 3~4세대로 가면 [[일본인]]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가 된다. 이른바 "통명"이라고 불리는 일본식 이름을 쓰면서 [[한국어]]에 서툴고 [[일본어]]에 유창하다. 혹은 이 두 언어가 [[피진]]화된 '재일어'로 통칭되는 언어를 구사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조총련이 운영하는 [[조선학교]] 등의 교육기관을 통해서 "조선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꾸준히 교육받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사카의 이쿠노구는 츠루하시 시장으로 대표되는 일본 최대의 재일교포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다.[* 2011년 9월 8일에 방영된 [[https://www.youtube.com/watch?v=u0V2WvN3qGg/|KBS 특집]] '쯔루하시 사람들'이 참고가 될 것이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오사카]]는 [[2ch]] 관서 외 지방의 혐한초딩으로부터 오사카민국[* 대판민국, 大阪民國, 공교롭게도 [[대한민국]]과 한자랑 발음이 비슷하다. 이 점에서 착안하여 아예 大阪을 음독으로 읽어서 '다이한민코쿠'(ダイハンミンコク)라고 읽는다.]이라는 욕을 듣기 일쑤다. 그렇다고 [[오사카]]의 한국인들이 순조롭게 정착한 것도 아니었다. 이들도 해방 이후 일본 사회에서 자리매김할 때까지 차별로 인해서 불안하기는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관동 쪽의 재일교포가 많은(많았던) 곳은 [[도쿄도]] [[고토구]]의 에다가와와, [[가나가와현]]의 [[카와사키시]]이다. 이 2곳은 [[오사카]]와 마찬가지로 공장지대라서 조선인 노동자가 많았던 지구였다. 오사카와 달리, 이 2곳은 한국적인 것은 없다. 길게 보면 [[일제강점기]]부터, 일반적으로는 해방 전후부터 쭉 살아왔던 오사카와 달리 [[1964 도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서, 판자촌에 살던 재일교포들을 치안과 경관문제를 이유로 공업지구에 이주시키면서 생긴 곳이다. 당연히 그곳의 치안은 개판이 되었고, [[일본 경찰]]은 그 지구를 포위하는 형식으로 곳곳에 파출소를 설치했다. 깡패마을로 밤마다 [[폭주족]]과 야쿠자 및 성범죄가 수두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재개발되어 치안이 급격하게 호전되어 현재는 도심부에 편입되었다. 관동 지역의 한인촌으로 [[도쿄도|도쿄]]의 신주쿠구 오오쿠보로 대표되는 히가시신주쿠 일대가 있다. [* 전후 롯데의 껌 공장이 이곳에 세워졌고, 일본 롯데의 본사도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원래 이 일대는 빈국 출신의 불법체류자 거주지로 유명했다. [[가부키초]]에 가까워 암흑가와도 연결된 우범지대라 땅값이 저렴했다. 이 일대에 한인촌이 형성된 데 2개의 설이 있는데, [[롯데]]의 껌 공장이 이곳에 세워져 재일교포의 고용이 다수 이루어져 노동자거주지가 형성되었다는 것이 있고, 또 다른 설은 이후 70~80년대 일본에 일하러온 불체자 한국인이 그 시초라는 설도 있다. 어느쪽이든 다른 국가 출신 체류자들과 달리 이 일대에서는 재일교포의 네트워크 이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다른 국적에 비해 자리잡기가 유리했다. 그렇게 형성된 코리아타운에, 90년대 후반부터 한일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일본의 한류열풍으로 일본으로 넘어가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급증하게 되었다. 이렇게 90년대 이후에 일본에서 정착생활을 하기 위해서 건너오는 한국인들은 보통 재일교포 사회에서 뉴커머(New comer)로 불리고 있다.[* 참고로 이러한 뉴커머들이 모여서 세운 단체가 있는데 이것이 재일본한국인연합회다.] 이 뉴커머들이 오오쿠보에 들어온 초기에는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일본은 쓰레기를 정해진 곳에 투명 비닐봉투를 구매하여 정해진 시간에 버려야 하는데 쓰레기를 아무곳에나 투기하거나 길거리에 버리거나 편의점 쓰레기통에 투기했었다.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리고, 한밤 중에 난동을 부려 현지 일본인들과 마찰이 많았다. 그러나 2010년 이후에는 한인촌 자체가 축소 되면서 중국인-재중동포(조선족)와 베트남, 네팔, 파키스탄 등의 아시아계 다국적 체류자들이 많다. [[할랄 푸드]] 취급점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니 아시안타운이라고 해도 될 태세. 한인촌 축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바가지]]였다. 애초에 일본물가로 봐도 너무 높은 바가지 장사를 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일본인도 한류붐과 희소성을 이유로 납득해왔지만, 판매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음식의 질이 가격에 비해 너무 후져, 대다수의 뉴커머 가게는 단골을 만들지 못하고 [[창렬|한인촌=비싸기만 하는 동네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버렸다. 때문에 한류가 가라앉고, 그나마 있는 한류팬도 차라리 한국에 가버림과 동시에 혐한바람이 불면서 한인촌에 찾아가는 일본인이 줄어 줄줄이 망했다. 반면 현지화가 이뤄진[* 무려 19세기부터다.] 일본의 차이나타운이 중일관계악화로 가속된 혐중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과는 대비되는 결과다. 또다른 뉴커머들이 불러온 부작용으로 한인촌의 단일화가 있다. 뉴커머 업소들은 완전히 일본에 정착할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에, 짧고 굵게 돈을 벌려고 그때 유행을 이용한 업소를 여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일본에서의 1차 한류붐에서는 죄다 [[삼겹살]]집을 하고, 2차 한류붐에서는 죄다 [[막걸리]]집을, 3차 한류붐에서는 어디가도 치즈닭갈비집인 상태가 되었다. --이런 거까지 한국 묻지마 창업하고 똑같네...-- 이러한 단일화는 한인촌의 매력 감소와 더불어 다양성이 부족하게 되어, 한류붐이 지나간 후에는 한꺼번에 망하게 되는 부작용을 불러와, 빈 업소에 중국, 인도, 동남아, 중동계들이 창업한 점포가 진출하여 한인촌의 지속적인 감소를 불러왔다. 실제로 1차와 2차 한류붐이 지나가면서 한인촌이 급격하게 축소하여 주변 타국가 업소가 진출하였고, 현재 3차한류 붐에 한국인들이 세운 점포 자체는 늘어났지만, 한인촌의 영역은 예전보다 축소되었고 한인촌 가운데에 대놓고 [[인도]]/[[베트남]]/[[터키]]계들이 창업한 점포가 진출하고, [[터키인]]이 만드는 치즈핫도그집[* 신오오쿠보에서 장사가 잘돼서그런지, 최근에는 일본 케밥업계는 한국식 핫도그도 같이 파는 게 관습으로 퍼지기 시작하고 있다.[[https://akiba-pc.watch.impress.co.jp/img/ah/docs/1396/636/html/kb1.jpg.html|아키하바라]], [[https://loco.yahoo.co.jp/place/g-LlevsdWbs5c/photo/?photoId=qZt4cy4mQjGR9UdvbJzj6A|타카다노바바]], [[https://kichinavi.net/akibakebab/|키치조우지]],[[https://4travel.jp/dm_shisetsu/11381492/pict|하라주쿠]], [[https://yashar-kebab.com/event.html|푸드트럭1]], [[https://ameblo.jp/nakameguro1192/image-12451035634-14382550626.html|푸드트럭1]]], 베트남인이 만드는 치즈닭갈비집등의 한류고객을 노린 외국인 업소도 많이 보이는 실태였는데, 2018년부터의 급격한 한일관계의 악화, 3차 한류붐의 종식[* 붐이 지나 생활화되어, 예전과 같은 집객력이 많이 상실되었다.], 2020년의 코로나 사태로 인한 외식업의 몰락으로 큰 위기를 맞이하였지만, 다행이 평균적인 일본 외식업계와 비교하면 그나마 나은 수준의 타격을 받고 버텼다. 1차적 원인으로는 코로나의 여파로 해외여행이 제한되면서, 해외여행기분을 낼수 있는 신오오쿠보와 츠루하시가 재주목되었기 때문이고, 2차적인 원인로는 BTS와 4세대 여아이돌의 흥행, 그리고 오징어게임을 필두로한 한국영화/드라마의 선방이 크게 작용하여, 한류붐이 식기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준 영향이 있다. 추가로 3차 한류붐세대들이 20-30대에 들어서면서 자금력을 가지기 시작하고, 소비력이 있는 고객으로 대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심하기 이르다. BTS를 뒤를 잇는 한국의 남성아이돌의 부재라는 공백을 일본 연예기획사가 한국식 아이돌을 벤치마케팅한 남성 아이돌 그룹을 내보이면서, 파이를 가져오고 있는 중이며, 한류의 주고객인 10대여성을 중심으로 신오오쿠보의 도로건너편에 있는 카부키쵸에서는 호스트와 아이돌을 결합한듯한 남성 지하아이돌 통칭"멘치카(メン地下 멘즈 지하아이돌의 약칭)"이 등장하여, 장래의 한류의 잠정고객을 잠식하고 있는 중이다. 10대여성들을 중심으로 저가로 만나고 이야기 할수 있는 친숙함을 내새운 아이돌로,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콘카페("コンカフェ"컨셉 카페)[* 메이드 카페등의 특정 컨셉이나 설정을 기반한 음식점 손님과 종업원이 1대1로 상대하면 호스트나 캬바쿠라같은 업종이 되어 풍속영업법의 제한이 걸리지만, 손님과 1대1로 상대하지 않는다는 편법으로 법을 우회하여 "음식점", "바"라는 명목으로 운영되고 있다.]의 운영법과 결합하여 악질적으로 변하였고, 실질적으로는 호스트와 다름이 없다. 많이 돈을 내면, 얼굴좋은 아이돌과 하룻밤도 보낼수 있기에, 10대 여성들이 스스로 성매매를 하면서까지 돈을 모아 바치는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다.[* [[https://news.yahoo.co.jp/articles/593f8f39db641c2617359c4608e0dcc9acb7b625|관련 뉴스기사]]] 또한 해당 시스템을 도입한 한국인 멘치카[* 한국 아이돌 기획사에서 탈락한 부류]까지 등장하여 신오오쿠보의 골목등에서 영업활동 및 극장에서 공연을 하기 시작하고 있다. [* 2023년 10월상황] 한류열풍에 편승한 컨셉 카페, 지하아이돌, KPOP바가 증가하면서, 빠르게 호스트거리로 변질되어가는 중이다. 풍속영업법의 규제를 받지않는다는 명목하에 미성년자와 관계를 가지는 정업원이 있는가 하면, 점장이나 오너가 길거리에서 나가서 미성년자를 헌팅하고 다니고 있다.[* 한인 상인회에 미가입이거나, 상인회의 요청에 불응하고, 역으로 상인회를 겁박하는 등, 막나가고 있다.] [[토요코 키즈]]문제로 아무리 [[토요코 키즈]]들이 타친보(매춘)을 하는 걸 검거해도, 나가자마자 바로 길거리에 서서 손님을 받는 이유가 호스트나 멘치카에게 돈을 갖다 바치기 위해서라는 인터뷰가 나오면서, 큰 사회문제인만큼 상당한 규제가 예상되고 있으며,[[https://www.asahi.com/articles/ASRB362NFRB3UTIL00V.html|#기사]] 이에따라 한인촌의 이미지악화와 규모의 축소가 걱정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뉴커머 업소들은 전통적인 한국 음식점들[* 실제로 일본 내에서 오래 영업한 한국음식점을 가보면 정석적이고 전통적인 한국 요리를 판매하면서, 약간 맛이 현지화된 곳이 많다.]이 밀려나게 하고, 최신유행 음식만 나오는 곳이 많은 한인촌으로 만들어 버렸다. 유행이 지나면 그 자리를 타국가 출신들이 창업한 점포가 차지하고, 유행이 오면 다 똑같은 업소가 되고를 반복하는 뉴커머 부작용의 연속으로 일본 한인촌 전체가 점점 소멸하는 길로 가고 있다. 뉴커머 업소가 한인촌 축소의 원인이 되는 이유는 '''지속성'''이 없어서 이다. 위에서 언급된 유행을 타는 건 관광지인 이상 숙명과 같은 것으로 차이나타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요코하마의 차이나타운도 어딜가도 [[북경오리]], [[지파이]], [[소롱포]], [[버블티]], [[탕후루]]를 파는 가게로 넘쳐나지만, 차이나타운의 업소들은 옛날부터 하던 가게가 유행에 따라 팔리는 요리를 노점 형태등으로 추가하는 형식으로, 원래 가게의 주인과 정체성은 유지되는 반면, 한인촌의 뉴커머의 업소는 n차 한류붐에따라 업소도 다르고 주인장이 매번 다르다. 19세기부터 일본에 온 중국/대만인들로 구정된 차이나타운은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일본에 터를 잡고 버티려고 하지만, 현대에 본국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온 뉴커머의 업소는 장사를 하기위해서 온것이지, 일본에 뼈를 묻으려는 각오를 한 사람은 전무하기에, 장사가 안된다 싶으면 바로 손절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버리고, 다음 한류붐에 또 다른 사람이 와서 유행의 음식으로 장사하기에 유행음식점만 넘쳐나고, 한국음식이라는 원 정체성이 약하기에 유행에 쉽게 휘들리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문제는 관광지화된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서도 보여지고 있는 형상으로, 올드커머로 부터 시작된 차이나타운과 달리, 신오쿠보의 한인촌은 태생부터가 뉴커머라서 그 형상이 뚜력하게 나오고 있다. 재일교포들 중에는 이러한 뉴커머를 "'한국인'"이라 부르며 싫어하는 재일교포들도 있다. 뉴커머들에게는 일본에서 사업에 실패하거나 문제를 일으켜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선택을 ~~일본에서 망한 인간이 한국으로 돌아가 재기할 수 있을지는 차치하고~~ 할 수 있지만, 재일교포에게는 일본이 삶의 터전이며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에, 일본에 뿌리를 내려 일본사회에 적응하려는 재일교포과 일본에 잠깐 있었다가 가는 한국인의 인식 차이에서 오는 한국인의 경솔한 행동이 일본 내에서의 재일 조선인의 입지를 좁혀버리기에 경계할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에서 온 사람(아주 먼 친척)들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한국에 가지도 않았는데 자기를 사칭하는 인간에게 유산을 빼앗기거나, 한국에 가서 따돌림을 당하는 등의 사례가 있다. 특히 심각한 문제로서 재일교포가 자기의 뿌리를 잊지 않도록 세워진 [[해외 한국인 학교|한국학교]]에, 해외학교에서 3년을 지내면 재외교포로 대학에 쉽게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실제로 [[외국어고등학교]] 고3 교실에서도 국제화전형 등의 입시, 출석 형평성 등으로 인해 이에 대한 불만이 상당한 상황이다.] "한국"에서 "한국인 학부모"들이 몰려와 "한국인 교사"와 "한국 교과서"로 "한국어"만 공부시키게 만들어 버려서 정작 재일교포가 제대로 혜택을 못 받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2013년 오사카부 이바라키시에 코리아국제학원이 창설된 계기도 오사카 지역에 [[조선학교]][* 조선학교의 경우 설립주체가 설립주체라 사상교육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도 있는 모양.]를 대체할 제대로 된 커리큘럼의 [[해외 한국인 학교|한국학교]]가 없어서였다고. 특례입시생들이 배우는 커리큘럼과, 현지 재일교포 3세들이 배우는 교육 커리큘럼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단 입시제도하고 국어 영어 수학부터가...-- 그러나 조총련계 [[조선학교]]나 민단계 [[해외 한국인 학교|한국학교]]에 다니는 재일교포는 애초에 소수이며 대부분의 재일교포들은 일반 [[일본]]학교에 다닌다. 이들은 일본인들로부터 차별받지 않기 위해서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하고 보통은 자신이 재일교포라는 사실을 숨기며 다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